경험적 가족치료에서는 가족에게 통찰이나 설명을 해 주기보다는 가족의 특유한 갈등과 행동양식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가족이 보이는 역기능의 양상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가족에게 주려는 경험 또한 다양하다. 그들이 제공하는 경험이란 가족 성원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기회, 표현의 자유, 개인의 성장 등을 의미한다. 경험적 가족 치료자는 치료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대인관계는 그 자체가 성장에 주요한 자극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치료자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든지 간에 과거를 들추기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즉 지금 여기에서 치료자와 가족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중시한 것이다. 가족과 치료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면담에 참여하는 가족이나 치료자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경험을 통하여 개인이 성장하도록 돕는 형태의 치료자로서 휘태커와 사티어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치료과정을 통하여 내담자의 체험을 중시하고 치료자의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관여가 치료적 변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방법에서는 차이가 보였다. 즉, 자시의 치료방법을 상징적 경험주의 가족치료라고 정의한 휘태커는 개인적 만남을 강조하여, 치료자는 자신을 이용하여 가족 성원에게 다가가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사티어는 치료란 무엇보다 성장과정의 체험 연습이라고 주장하며, 치료자는 가족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성장모델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소견으로는 현재 이들처럼 전적으로 경험적 치료만을 가지고 가족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사려된다. 그것은 경험적 치료는 뛰어난 임상적 감각은 물론이며 가족을 경험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재능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휘태커나 사티어처럼 천부적인 카리스마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1) 주요 인물:단연코 비전통적이며 도발적인 치료를 시도한 휘태커를 들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치료 고정의 경험을 통하여 경직된 가족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가식에서 스스로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만드는 타고난 재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기 가족치료처럼 그도 정신분석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원래 산부인과의 훈련을 받았던 정신과 의사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 군에 소집되어 거기서 정신과 공동치료팀에서 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신치료에 관심을 가졌다. 전쟁 후 에모리 대학교 외과대학에 정신과를 세우고 과장으로 재직하였다. 휘태커는 1955년에 애틀랜타 정신 진료소를 설립하였다. 그곳에서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와 만나면서, 정신분열증을 성장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나름대로 만들어 낸 창조적인 해결책이라고 규정하였다. 정신분열증 치료에 있어 치료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은 환자인 동시에 치료자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입장을 선택하였다. 그는 치료과정 중에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몰입하는 경험을 통하여 양쪽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치료가 환자를 성장시킨다면 치료자 역시 인간적 또는 학문적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같은 역설적 접근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던 중, 질병의 원인 중에 가족이 중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초기 입장을 확장시켜 내적 심리 딜레마와 대인관계의 딜레마를 가지고 정신분열증을 개념화하고 가족을 치료에 참여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휘태커의 상징적 경험주의 가족치료가 탄생하였다. 1965년 이후 휘태커는 위스콘신 의과대학에서 일하며 메디슨에서 개업하였다. 두 번째 인물로는 사티어를 들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접근방법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그녀는 초기에 MRI에서 일했기 때문에 의사소통 가족 치료자로도 알려져 있다. 사티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잘 되려는 잠재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적절하게 양육되면 건강한 성인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나무의 속성에 비유하여 종자 모델이라고 ㅎ였다 그녀는 자신의 치료적 접근을 가족 치료자와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가족의 건강한 교류를 촉진하여 성장을 자극하는 것에 목표를 둔 성장모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녀의 접근방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성장 의사소통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티어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6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교편생활을 하였다. 교사로 재임하면서 200녀 학생의 가정방문을 하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가족에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48년 시카고 대학 안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하였으며, 1951년 자신의 가족치료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가족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에는 일리노이 정신의학센터에서 가족의 역동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정신분열증 환자가족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녀는 잭슨 등을 도와 MRI를 설립하였다. 그곳에서 최초의 가족치료 훈련 프로그램을 고안한 것도 그녀의 업적 중 하나이다. 그녀의 치료는 감정표현을 중점으로 하며, 접근방법은 치료기간 동안 가족을 연습과 활동에 참여시키는 경험적인 것이다. 그 밖의 경험적 가족 치료자 켐플러, 캔터, 덜을 들 수 있다. 켐플러는 펄스에게서 받은 게슈탈트 치료 훈련겸험을 가족치료에 접목하려고 노력한 치료자이다. 켐플러는 치료자와 가족과 평등하게 치료의 참여자로 참여하여, 그들의 세계를 경험시키려고 하였다. 그 역시 가족의 게슈탈트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를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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