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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성원이 보이는 문제행동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그 개인이 속해 있는 가족 전체의 인간관계의 병리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문제를 가족 역동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개인에 초점을 맞춘 직선적 인과관계를 추구하는 심리치료에 익숙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관점을 가족체계를 중심으로 한 순환적 인과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인식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임상 사례를 가족 역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즉, 식욕부진증, 가정 내의 폭력, 등교 거부, 비행 문제를 가족 역동이라는 점에서 재조명해 봄으로써 개인 치료와 가족 치료의 차이를 더욱 명확히 하려고 한다. 여기서 소개되는 사례는 저자가 담당했던 사례 및 이미 논문에 소개된 다른 치료자의 사례를 정리한 것이며, 저자의 사례는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둔다.

1. 밀착된 가족: 신경성 식욕부진증 자녀를 둔 가족

 청소년기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발달과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으로부터 자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경험 가운데서도 보다 강렬한 경험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청소년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연결을 분리해야 하며, 동시에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공포 또는 기대를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정서적으로 바람직하게 연결되며 그것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면, 그것은 심리적 이유의 실패와 연결되기 때문에 여기서 여러 가지 정신적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청소년이 지닌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 지나치게 강한 부모 자녀의 결합, 부모 자녀의 단절, 부모 자녀 간의 갈등 등이 그 배경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신경증은 가족으로부터 자립해야 하는 발달과제를 성취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1)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특징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일반적으로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의 미혼여성에게서 자주 보이는 증상이다. 이들은 이 같은 문제가 있기 전에는 내향적이고 착실한 노력가로 학업이나 일상적인 활동에서 평균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어릴 적에 부모에게 별로 의존하지 않는 손이 가지 않는 자녀라는 평을 들었으며, 때로는 자기주장이나 결단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식욕부진증 발생은 친구 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남자 친구를 사귀는 데 실패하는 등의 정신적 요인이나 비만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는 신체적 요인이 대부분이지만, 떄로는 계기가 확실하지 않은 예도 있다.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식욕부진. 체중감소, 무월경, 변비 등이다. 이러한 증상은 언뜻 보면 내과의 도움을 필요한 신체적 증상처럼 보이지만, 이것의 배경은 식욕부진에 있다. 식욕부진은 모순된 부분이 많아서 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많이 먹기도 하고 때로는 먹지 않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가족 몰래 먹거나 밖에서 간식을 먹는 경향이 있다. 또한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훔쳐 먹는 예도 있다. 몰래 먹을 때는 정신 없이 먹어대는 대식(bulimia)의 경향이 있으며, 먹고 나서는 설사약이나 인위적 방법을 사용해 곧 토해낸다. 어떤 사례의 경우에는 가족 앞에서 당당하게 대식을 하여 그 때문에 살이 찌고 다시 먹지 않고 또다시 대식하는 악순환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때도 있다. 또한 이들은 섭식 행동의 장애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IP는 먹지 않아서 지나치게 말랐는데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학교나 집안일 등은 계속한다. 주위에서 걱정하여 이러한 활동을 저지하면 상당히 강한 반발을 한다. 식욕부진증 환자의 이와 같은 게 느긋하지 못한 부분 또는 과도한 활동성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들이 휴일이나 휴가 기간에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다른 사람이 걱정하는 만큼 자신의 신체 상태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자신이 병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다. 

 발병과 함께 대인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보여서 가정 밖에서는 혼자 잘난 척하거나 반대로 누구에게나 분위기를 맞추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한편 가정 내에서 보이는 대인관계는 획일적이다. 특정의 부모에게 반항과 의존이 혼합된 양면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는 부모는 지금까지 순종하던 아이가 갑자기 반항하거나 못되게 군다는 사실에 너무 크게 집착하여, IP의 의존적인 태도를 잘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임상적 경험에 의하면 IP는 현실적으로는 의존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강하다. 그러한 증거로는 발병 이후 부모, 특히 어머니를 독점하려고 하며 어머니 관심이 자신 이외의 다른 형제나 다른 사람을 향하면 기분을 상한다. 발병 전에 그다지 많은 요구를 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요구가 많아지고 발병과 함께 인형, 봉제 장난감, 애완동물에 이상한 애착을 보인다. 돈에 대한 집착도 강해져서 부모에게 용돈을 강요하여 돈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모인 돈은 음식물을 사서 먹어 버리는 데 전부 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감정이나 계획이 상당히 빨리 바뀐다. 또한 상당한 공허감을 느끼며 언제나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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